몽위 전편 (1/5)

2019. 8. 22. 00:14동방/동방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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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주소


몽위 전편 (1/5)

작가: みく

번역: 푸쿠보


태그: 유카리, 메리, 유유코, 렌코




『실재하는 현실과 꿈의 현실, 실재하는 나와 꿈의 나, 그게 각각의 별개의 인물로서 존재해.』

────몽위 과학 세기: 마에리베리 한




 꿈을 꾸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좋은 아침 입니다, 유카리 님."

 

 처음 눈에 들어온 건 침실 천장이었다. 셀 수 없이 봐온 익숙할 터인 목재의 그것이 오늘만큼은 왜인지 무척이나 그립게 느껴졌다. 불규칙하게 일그러진 나뭇결이 규칙적인 그물 형태로 깔끔하게 나뉘어진 천장. 혼돈과 질서, 불안과 안정. 마치 그 자체로 나를 상징하는 것처럼 느껴져서 무척이나 자랑스럽게도 느껴졌다.

 앞머리를 쓸어 올리며 슬쩍 옆으로 시선을 돌렸다. 거기에는 공손히 고개를 숙이고 있는 식신의 모습이 있었다. 여전히 초점이 맞지 않는 시야 속, 두개골 안 쪽에서부터 둔한 통증이 퍼져나간다. 그것은 현실감을 띈 채 나를 현실에 붙잡아두고 있었다.


 "좋은 아침. 지금 몇 시니?"

 "인시(寅時), 4시 전 입니다."


 하, 숨이 새어나갔다. 아무래도 서방 답사 과정에서 시간 감각이 어긋나버린 모양이다. 무거운 몸뚱이를 억지로 일으켜 세웠다. 피로는 여전히 남아있었다. 후우. 깊은 한 숨을 내뱉는 것으로 들러붙는 졸음 기를 떨쳐냈다.


 "여전히 피로가 남아있으신 모양이군요."


 내 마음을 훤히 꿰뚫어 보듯 옆에서 말을 건 것은 나의 식신, 그 이름 야쿠모 란 이었다. 일찍이 대륙에서 이름을 떨친 이 요호도 지금에는 내 손과 발이 되어 일하는 도구일 뿐이었다.

 대륙 풍 의상에 거대한 9개의 꼬리, 수호 부로 장식된 모자 밑에 숨겨진 귀를 제외한다면 얼핏 봐선 인간과 별다를 바 없는 모습한 식신이지만, 미색을 겸비한 그 몸뚱이에는 보통 이상의 강건함이 느껴졌으며 짧게 정리한 금빛 머리카락, 그리고 그 마찬가지로 금빛으로 반짝이는 꼬리의 털 결이 한데 어우러져, 그녀에게는 인간 이상의 존재가 갖는 특유의 신성함에 가득 차있었다.

 억지로 뒤집어 쓴 순종하는 종자의 가면 밑으로 때때로 엿보이는 요염함과 자립심은, 그녀가 원래부터 가지고 있었던 끓어 넘치는 어떠한 기질이 나의 술식으로도 완전히 억누르지 못했다는 증명일지도 모른다.

 

 "식사 준비는 이미 끝내 뒀습니다만,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래…… 먹을게."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인 란은 그대로 소리도 없이 방을 나갔다. 인기척 하나 없는 방에서 홀로 가볍게 기지개를 켰다. 일에 열심인 건 좋지만 저렇게 일일이 이쪽의 눈치를 살피고 있으니 역으로 이쪽이 불편해졌다. 언젠간 저 것에게도 무언가 오락이란 걸 가르치지 않으면 안되겠어. 다시 한 번 깊이 심호흡을 한 뒤, 나는 이불에서 무거운 허리를 들어올렸다.

 내가 방에 들어갈 무렵에는 이미 상이 차려진 뒤였다. 방금 막 지은 쌀밥과 삶은 죽순, 말린 고기는 사슴이겠지. 바쁘게 척척 움직이던 란은 내가 다가온 것을 눈치채고는 곧바로 말석에 자리잡았다. 밥상 앞에 앉으며 나는 란에게 편히 있으라고 명했다. 주종으로서의 상하 관계의 분별도 물론 중요하지만, 쓸데없이 딱딱하고 엄중한 자리는 취향이 아니었다.

 

 "서방 답사는 어떠셨습니까?"

 

 태도는 여전히 딱딱했으나, 나의 의도를 다소는 헤아린 듯 란이 질문했다. 반 년 만에 먹는 쌀은 역시 맛있었다. 씹을 때마다 입안 가득 희미하게 퍼져나가는 달큼함은 스스로가 이 동쪽 끝에 떠오른 섬에서 태어난 요괴라는 것을 실감하게 해주는 것이다.


 "여기나 거기나 그게 그거였어." 나는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회교도들의 도시는 아름다웠지만, 거기보다 서쪽은 그냥 피 냄새 진동할 뿐. 신이랑 악마도 구별하지 못하는 바보들이 예루살렘을 위해서 라는 둥 시치미를 떼며 약탈과 살육에만 열심인, 지독한 난리통이었네."

 "저런 저런."

 "즐거웠던 건 식사 정도? '고기'는 손 쉽게 손에 넣을 수 있었으니까."

 

 쓴웃음과 함께 경박하게 말할 작정이었으나, 란은 그다지 그 분위기에 어울려주지 않았다. 그대신, 엄중한 말투로 이런 질문을 던질 뿐이었다.

 

 "그래서, 저 쪽의 '유일신' 이라는 것과는 접촉해 보셨습니까?"

 

 죽순을 한 입 베어 물었다. 향신료와 유제품으로 길들여진 혀에는 다소 싱거웠지만 초봄 특유의 산뜻한 풍미는 오장육부에 스민 사취를 어느 정도 씻겨주는 듯 했다. 이라고는 해도 지금의 교토도 피비린내로 따져보면 그 나물에 그 밥 수준이었지만.

 시간을 들여 죽순의 맛을 음미하고 나서 란의 질문에 대답했다.

 

 "틀렸어. 추종자 녀석들이 좀 시끄러워야 말이지. 그 쪽 토착신이랑은 몇 명 정도 친지가 있으니까 좀 물어봤는데, 코웃음 치며 비웃더라고. 시종일관 아버지 눈치만 보며 흠칫 거릴 뿐인 애송이 녀석이니, 어지간해선 스스로 걸어 나오진 못하겠지, 라면서."

 "꽤나 입이 험한 토착신이군요."

 "뭐어, 그쪽 입장에서 보면 신앙을 빼앗기고 땅에서 내쫓겨, 개명까지 당한데다가 끝끝내는 악마 취급까지 당하고 있으니까 말이지. 그렇게 되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 아니겠어?"

 "그렇다고 한다면 그들도 역시……."

 

 거기까지 말하고 말문이 막힌 란에게 시선만으로 대답했다. 란 역시 그걸로 깨달은 것인지 이윽고 눈을 내리 깔았다.

 

 굳이 일부러 서방까지 먼 길까지 발을 뻗은 것은 이주의 가능성을 확인해보기 위해서였다. 그들의 땅이 우리들 요괴에게 있어서 앞으로도 살기 좋은 땅인 채로 유지될 수 있는가 없는가, 그것을 알고 싶었다. 허나 결국 저쪽도 상황은 마찬가지. 사용법을 모른 채 '지혜'만을 얻게 된 인간은, 인외와 어깨를 나란히 했고, 이제는 그조차도 능가하려 하고 있다. '신'의 이름 아래, 각지의 토착신이나 '악마'를 끊임없이 구축해가는 인간의 광연. 땅끝의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은 그러한 광경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동쪽 끝에 떠오른 이 섬나라에서도 별 다를 바 없었다. 귀족 녀석들이 우스꽝스럽게 미쳐 날뛰는 지금의 교토는 요괴가 발호하기에는 절호의 땅이라는 말까지 있을 정도였다. 함정, 계략, 그리고 배신──, 인간끼리의 싸움에 요괴가 협력하고, 인간이 요괴에게 동족의 멸족을 구걸한다. 이제 와선 인간과 요괴의 경계조차도 퇴색해버린 이 미쳐버린 세상은, 확실히 지루하지는 않았다.

 허나 그것은, 동시에 인간이 요괴를 뛰어넘는 힘을 얻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러한 나의 우려에 진지하게 어울려주는 이는 거의 없었다. 오니에 이르러서는 오히려 드디어 인간이 자신들과 대등하게 싸울 수 있게 되었다며 기뻐하기 까지도 했다.

 그렇다고 해도, 다. 그 인간이, 동족에게 조차도 태연하게 칼을 들이미는 그 자들이, 만약 이대로 그들로서는 감당하지도 못할 힘을 계속해서 늘려나가게 된다면 그 끝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그 혼돈의 끝에서, 성장에 성장을 거듭한 인간은 과연 우리들 요괴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나는 그것을 걱정했다. 그렇기 때문에 먼저 선수를 쳐서 서방으로 답사를 가보았던 것이지만, 눈 앞에 들이밀어진 현실은 나를 참담한 기분에 빠지게 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교토에서 누에가 퇴치 당했다는 모양입니다."

 

 젓가락을 내려둔 나에게 란은 눈을 내리깐 채 중얼거리듯 보고했다. 명성을 드높이기 위해, 힘을 과시하기 위해…… 이유는 모른다. 그저 일찍이 인간을 두려움에 떨게 했던 이름있는 자들이 인간의 손에 퇴치 당한다, 그런 소식을 듣는 일이 빈번해졌다. 차를 한 모금 홀짝이고, 복잡한 심경을 털어내듯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오니가 인간에게 지는 일도 늘어났다는 모양이었다. 애당초 너무 이기기만 하지 않도록 잘 조절하고 있다고는 했지만 최근에는 사람도 수법을 바꾸고 도구를 바꿔서──그야말로 더러운 수단까지도 이용해서──오니를 쫓는 수단 그 자체도 보다 발달하고 있다는 듯, 진심을 다해서 싸웠음에도 인간에게 완벽하게 패배하는 일도 늘어났다고 한다.

 딱히 오니나 다른 요괴들을 가엾이 여기는 것도, 또는 현명한 척 충고를 할 작정인 것도 아니다. 나약한 녀석은 아무 것도 안 해도 얼마 안가 뒈져버린다. 그 섭리에 반론을 할 생각 따위는 요만큼도 없다. 그저, 요괴가 인간 따위에게 꺾여버리는 것을 말없이 잠자코 지켜보고 있을 수가 없었을 뿐이었다. 마치 요괴로서 이름을 떨친 존재인 나 자신의 이름에 먹칠하는, 그런 굴욕적인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한 번쯤은 붙어보고 싶었는데."

 "……유감입니다."

 

 텅 빈 찻잔을 내려놓았다. 명령할 것도 없이 란은 텅 빈 상을 치웠다. 깊이 숙인 채, 미소 하나 없이.

 문득, 방금 전까지 꾸고 있었던 꿈이 머릿속을 스쳤다.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았다. 왠지 뭔가 무척이나 행복한 꿈이었던 것 같은 기분은 들었으나, 세세하게 떠올리고자 하면 후두둑 하고 머릿속에서 떨어져 내렸다. 뭐어,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현실의 건너편에 행복이 있다면, 그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좋은 소식임이 분명할 터. 형태 없이 막연한 멀고 그리운 꿈의 기억이, 머리 깊은 곳에 의연히 남아있던 통증과 섞여, 스며들었다.

 

 "그것보다 란. 출발하기 전에 부탁해뒀던 건 어떻게 됐지?"

 "네. 이 쪽에."


 상을 치운 뒤 방에 돌아온 란의 손에는 두꺼운 종이 뭉치가 있었다. 그 빈틈 없음에 내 뺨도 무심결에 미소를 짓고 있었음이 틀림없다. 그걸 따라 하듯 란의 얼굴에도 미소가 떠올랐다. 문자로 꽉꽉 들어찬 안피지 다발을 받아 들고 팔락팔락 훑어봤다.


 "뭔가 변한 건?"

 "그게 아무래도 그저 힘을 늘려가고 있을 뿐인 모양이라. 끊임 없이 사람을 죽음으로 유혹하고 그 영혼을 먹어 치우고 있습니다.

 "좋은 일이네."

 

 자료 속의 들어찬 어마어마한 문장양은 지금의 대답을 뒷받침 하는 증거들이었다. 나는 놀라기까지 했다. 출발하기 전에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성장했기 때문이었다.

 자료를 흘겨보면서 수식의 계산을 다시 짜냈다. 만개까지의 시간을 환산해보니, 보다 강고한 결계를 구성하지 않으면 '그것'을 손안에 넣는 것은 불가능할지도 몰랐다.

 

 "이해했어. 란, 요석은 5개. 지맥의 흐름을 머릿속에 입력해두고, 힘이 상쇄되지 않도록 돌의 속성과 차이를 확실히 고려해둘 것."

 "예!"

 "오니나 너구리 언저리에게 물어보렴. 그런 건 그 치들이 자세하니까."

 "본부 받들겠습니다."

 

 그런 지시를 내리는 와중에도, 머릿속에서는 점점 하나 둘 하고 술식이 쌓여갔다. 막 일어난 것치곤 꽤나 상태가 좋다. 온갖 가지 가능성을 고려한 끝에 이끌어내진 결론은, 그러나 당초의 목적을 흔들 정도의 것은 아니다 라는 것이었다. 나의 예정에 틈새 따윈 없었다.

 

 "──그래서, 예의 인간은 아직 '있는 거지'?"

 

 질문이라기 보단 확인에 가까운 물음에 란도 당연하단 듯이 대답했다.

 

 "예. 그 요괴 벚나무의 성장에 발 맞추듯, 후지미의 딸도 힘을 늘려가고 있습니다."

 

 수긍했다. 즉 모든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단 뜻이다. 그렇다면 나쁘지 않다.

 

 "……알겠어. 한 번은 내 눈으로도 확인하지 않으면 안되겠네. 얼마나 훌륭히 자랐을지."

 "바로 나가시나요?"

 "아니, 가는 건 밤이 밝아지고 나서야. 인간 자식들의 형편에 맞춰주는 것도 때로는 괜찮잖니."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자리에서 일어선 란은 바닥을 정리하기 위해 침실에 들어갔다. 나는 쥐고 있던 두꺼운 자료를 타타미에 내던졌다. 툭 하는 가벼운 소리가 나고, 방은 조용해졌다.

 만족스럽게 꽉 찬 위장 탓일지, 깨자마자 머리를 굴린 탓인지, 그도 아니라면 교토의 그윽한 분위기 탓인지, 다시 한 번 졸음이 내 전신을 꽉 붙잡아 억눌렀다.

 역시 아직 피로가 덜 풀린 게 맞나 보다. 몸은 물 먹은 솜처럼 무거운데 머리만이 바쁘게 내달리며 회전하고 있다. 눈을 감자 어떻게 하면 좋을지 알 수 없는 상념과 함께 번개를 꼭 닮은 섬광이 눈꺼풀 안 쪽에 튀더니 사라졌다. 그 번쩍임은 아까 전부터 두개골 안 쪽에서부터 울려 퍼지던 둔한 통증에 녹아 하나가 되어, 양초처럼 희미한 열을 안구 안쪽에 떨구었다.

 역시 한 번 더 자야겠어, 그리 생각하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해가 뜨면 또 나가봐야만 했다. 시간 감각이 맛이 가버리는 생활이 앞으로도 계속되는 것이다. 그 계집에게 예상대로의 이용가치가 있을 것인가, 앞으로는 그것을 판별해내지 않으면 안 되니까.






 *






 꿈을 꿨다.

 등 뒤에서 누군가에게 잡아당겨지기라도 하듯 상체가 튀어 올랐다. 책상에는 전원이 켜진 채인 컴퓨터와 펼쳐져 있는 노트, 알록달록 예쁜 포스트잇으로 몬스터가 된 책, 너덜너덜해진 복사용지다발…… 이거 완전 깜박 잠들었던 모양인데?

 아차 싶은 마음에 황급히 컴퓨터를 살폈다. 화면 가득 표시된 문서 파일은 가장 마지막에 의미불명의 수식이 덧붙여져 있는 것을 빼면 제법 그럴듯하게 형태를 갖추고 있었다. 밑에서 위로 스크롤 바를 쭈욱 하고 올리자, 이윽고 맨 첫 페이지가 화면에 모습을 드러냈다.



신화의 유사성에 따른 상대성 정신학적 고찰——『감응론』의 실마리


마에리베리 한


 어찌어찌 끝내긴 했구나, 저장 아이콘을 클릭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어떻게 완성시켰는지는 전혀 기억나지 않았지만, 기한 안에는 맞춘 것이다. 이걸로 오늘 있을 졸업 논문 중간 발표회는 대충 넘길 수 있을 터.

 휴대폰이 줄곧 울리고 있는 것에 뒤늦게 눈치챘다. 아침 알람이었다. 반쯤 감긴 눈을 비비며 모니터 한 구석의 시계를 확인했다. ……벌써 10시가 넘었네.


 "아아, 너무 잤다……."


 앞머리를 쓸어 올리면서 슬쩍 바로 옆에 있는 창문을 보았다. 바깥에는 오전중임에도 불구하고 살짝 어두컴컴한 교토 시내와 그것을 비웃기라도 하는 것처럼 강렬히 내리 쬐는 햇볕이 있었다. 7월도 다 끝나가는 지금 시기에는 이런 시간이라도 진저리가 날만큼 더웠다. 인류가 아무리 진보한들 교토의 여름 더위를 누그러뜨리는 건 불가능한 일인가 보다.

 서서히 머리를 조여오는 통증에 저항하며 의자에서 일어섰다. 다리가 뒤엉켰다. 뭐 어쩔 수 없지. 요 며칠간은 줄곧 논문에 쫓겨서 밤이고 낮이고 알지도 못할 생활을 계속했으니.

 실컷 하품을 하면서 언제 갈아입었는지도 모를 룸 웨어를 침대 위에 집어 던졌다. 홀딱 벗은 채로 욕실로 뛰어들었다. 정말 칠칠치 못하다니까, 라고 스스로를 늘 비웃지만 결국 매번 똑같은 짓을 하고 만다. 그도 그럴 것이 책상에서부터 욕실까지 걸어서 열 걸음이 채 되지 않는 것이다. 원룸에 혼자 사는 대학생의 생활이란 결국 이런 것이다.

 아직 잠이 덜 깬 머리를 두들기는 온수가 어느 정도 졸음을 내쫓아주는 가운데 감각이 없었던 양팔 양다리에도 조금씩 신경이 통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어깨랑 허리는 쓸데없이 딱딱하게 굳어있었는데, 책상에 엎드려 쳐잤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끈적끈적하게 떡이 져서 저들끼리 얽히고 설킨 머리카락은 특히 주의하며 머리를 헹군 뒤 샤워 호스를 잠갔다. 몸을 닦고, 우선 속옷만 입는다. 중요한 건 지금부터다.

 드라이기를 한 손에 들고 거울 앞에 앉았다. 내 머리는 심한 곱슬머리였다. 거울 속의 폭탄 머리를 째려보고 나서 복잡하게 굽이치는 금색 실 덩어리에 빗을 쑤셔 박았다. 일본인 치곤 드문 머리카락 색인지라 선망의 목소리도 높았지만 이렇게 취급이 몹시 성가시기 때문에 스스로의 머리카락을 자랑스럽게 여긴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빗에게 맹렬히 저항하는 머리카락과 격전을 펼치는 와중, 문득 머릿속에서 방금 전에 꿨던 꿈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나도 그런 메이드가 있었으면 좋을 텐데……."


 어떤 꿈이었는지 자세히는 기억나지 않았지만, 예쁘장한 여성이 황송할 만큼 정성스럽게 시중을 들어줬던 것만큼은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나도 그런 사람이 있었으면. 아침에 눈뜨면 아침밥 차려주고, 머리 빗겨주고, 옷도 갈아 입혀주고…… 정말 얼마나 부러운 생활인가. 부디 그런 신분이 되어보고 싶을 따름이다.

 그런 아무 영양가도 없을 망상에 젖어있는 동안 머리카락도 어느 정도 남들한테 보여줄 정도로 정리가 되어있었다. 이런 식으로 아침에 눈뜨자마자 귀중한 칼로리를 빼앗기는 형국이다. 좋아할 수 있을 리가 있겠나. 역시 "그 녀석"처럼 좀 더 머리를 짧게 자르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짓 하면 렌코가 비웃겠지, 분명……."


 누구도 듣지 않을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드라이기의 전원을 껐다. 시끄러운 모터소리가 사그라들더니 이윽고 조용해졌다. 거울 속의 여전히 졸린 듯이 멍한 자신의 얼굴에 쓴웃음을 날린 뒤 냉장고로 향했다. 냉장고 안에는 필요 최저한 이하의 식료품과 조미식료, 언제 샀는지도 기억나지 않는 물건들이 몇 개. 그런 텅텅 빈 안쪽과 대조적으로 문 쪽에는 캔으로 된 알코올 음료로 복작거렸다.

 그런 서글픈 생활상이 훤히 보이는 냉장고에서 버터와 햄을 꺼내고, 전기 포트에 물을 올렸다. 이제는 전기만 있으면 1분도 안 걸려서 물이 끓는 시대였다. 포트의 전원을 켜고 냉장고 위에 굴러다니는 봉지에서 식빵을 한 장 꺼내 버터를 치덕치덕 발랐다. 그 위에 햄을 몇 조각 얹고 반으로 딱 접으면 아침밥 완성. 딱 맞춰서 물도 다 끓었다.


 "아, 컵 저기다 뒀지 참."

 

  밤새 커피를 마셨던 걸 이제 와서 떠올렸다. 즉석 샌드위치를 얹은 접시와 주전자 형태의 전기포트를 쥔 채 책상까지 걸어갔다. 안 쪽으로 갈색 원이 남아있는 머그컵에 적당히 인스턴트 커피 분말을 털어 넣고 끓는 물을 부었다. 따뜻한 수증기와 함께 인스턴트 특유의 싸구려 커피 향이 찌듯이 더운 방 안에 피어 오르는 것으로 겨우 아침 식사가 성립된 것이다.

 맛대가리 없는 샌드위치를 갉아먹으며 나는 한번 더 발표용 대본을 눈으로 쓱 훑었다. 지금 당장 다시 읽어본들 뭔가 바뀌는 건 없겠지만 보지 않으면 않는 대로 불안한 것이다. 완성도로만 보자면 스스로가 보기에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면서도, 역시 사람들 앞에 서서 발표하게 되면 또 다르리라.

 논문의 내용을 간단히 추려보자면, 요는 일본과 서양의 비교신화론 같은 것이다. 이번에 고찰하기로 한 것은 일본신화에서의 이자나기와 이자나미의 관계와 그리스 신화에서의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의 관계에 대한 것이었다.

 이 두 이야기의 상동성은 옛날부터 지적되어 온 것이었다. 이자나기와 이자나미 쪽은 대충 요약해보자면 저승으로 떠나버린 아내 이자나미를 남편 이자나기가 데리러가는 이야기다. 우여곡절 끝에 이자나미가 있는 곳까지 도달한 이자나기였으나, 방 안을 보지 말아달라는 아내의 말을 무시하고 방 안을 훔쳐보고 말았고, 거기에는 몸이 썩어 문드러져 구더기가 끓고 있는, 과거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어진 이자나미가 있었다. 이자나기는 두려움에 그대로 도망쳐버렸고 추악한 모습을 들킨 아내 이자나미는 수치심에 이자나기를 증오한다. 그리고 그렇게 둘이 헤어지고 만다는 것이 결말이다.

 오르페우스의 이야기 역시 다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이제 막 결혼하여 알콩달콩할 신혼 생활을 보낼 터였던 오르페우스는 아내인 에우리디케를 잃고, 명부까지 죽은 아내를 데리러 간다. 음유시인이었던 오르페우스는 아내를 잃은 애절한 시를 지어 헌상하는 것으로 명부의 주민들의 마음을 포로로 삼고, 특별히 에우리디케를 데리고 돌아가는 것을 허락 받는다. 단, 지상에 도착할 때까지 뒤를 돌아봐서는 안 된다는 조건 하에.

 에우리디케를 데리고 지상을 향하던 오르페우스였으나, 앞으로 한 발자국 이면 지상인 바로 그 순간, 아내가 제대로 뒤따라오고 있는 것인지 걱정이 된 오르페우스는 약속을 깨고 뒤를 돌아보고 만다. 동시에 에우리디케는 명부로 다시 끌려들어가고, 두 사람은 그대로 영영 이별하게 된다고 하는 줄거리다.

 물론 세세하게 따져보면 그리 비슷하지도 않은 듯하고,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다만 구조적으로 보면 유사성을 발견할 수 있는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이라 이전부터 수도 없이 갑론을박이 벌어져왔던 주제이기도 했다. 인류학에 있어서 신화적 구조 연구 등은 잘 알려져 있을 것이다. 물론 내 전문분야인 정신과학 쪽으로부터의 견해도 존재한다. 융의 [보편적 의식]이나 [원형]의 개념을 이용한 주장이 대표적이다. 그러한 기존의 고찰을 현재의 상대성 정신학 개념에 따라 비판적으로 재검토하는 것이 이번 나의 논문의 요점이기도 했다.

 화면 속에 흐르는 문자열을 바라보며 퍼석퍼석한 샌드위치를 커피를 이용하여 위에 쑤셔 넣었다. 인공육을 굳힌 햄에 인공우유를 원료로 한 버터, 거기에 인공밀알을 빻아서 만든 빵――, 그러한 식사는 “작업”이라고 형용하는 것이 가작 적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라도 좋으니 천연 야채를 마음껏 뜯어먹고 싶었다. 그렇다면 이 더위도 어느 정도는 가실지도 몰라. 그러고 보니 꿈속에서는 훨씬 더 맛있는 걸 먹지 않았던가? 갑작스럽게 떠오른 생각은 이윽고 확신이 되어 그럼에 틀림없다는 생각마저도 들었다.

 사실, 맛 같은 것을 떠올릴 새도 없이 정신 차리고 보니 접시는 텅 비어있었다. 할 일을 마친 손은 무의식 중에 핸드폰을 쥐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대기 화면 속의 웃고 있는 소녀. 몇 번이고 보아 이제 익숙해졌을 그것은, 어째서인지 무척이나 따뜻하고 그리워졌다.

 우사미 렌코――, 그것이 소녀의 이름이었다. [비봉 구락부] 라는 단 둘만으로 성립하는 오컬트 서클의 나머지 한 쪽이었다. 여대생을 소녀라고 부르는 것에 어폐가 있을지도 모르나, 단 둘이 있있을 때 정말로 소녀 그 자체인 반응을 보여주기 때문에 그 표현이 틀리지는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립다는 것에 별다른 의미는 없었다. 나는 정신과학, 렌코는 물리학, 즉 전공이 전혀 다르다.

 그러니까 서클활동이 정체되면 좀처럼 만날 수가 없다는, 그저 그 뿐인 이야기다.

 특히 렌코도 나도 여름 방학 전에 있을 졸업 논문 중간 발표회, 그러고 얼마 안 있어서 대학원 입학시험 등, 이래저래 바쁜 것이다. 뭣보다 우리 대학은 학사에서 박사까지 가는 데에 있어서 이 중간 발표회에서 제대로 성과를 낸다면 그 뒤가 편해진다더라 라는 뒷 사정도 있는 것이다. 즉, 최대의 난관이 그야말로 바로 오늘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렌코와 마지막으로 만난 것은 삼일 전, 함께 저녁밥을 먹으러 갔던 날이던가. 그 때는 렌코는 꽤 여유 있어 보였지. 뭐 이상한 일도 아니다. 장시간의 교류 끝에 실감하게 됐다만, 그 아이는 남들과는 머리 구조 자체가 다르다.

 제대로 심사 받은 논문을 “좀 더” 쓰라고, 지도 교수가 잔소리한다거나 하는 얘기도 들었다. 그렇다는 건 즉 본인에게 의욕만 있다면 언제라도 세상에 발표할 수 있는 발상을 품고 있다는 의미일 터. 서클 활동을 할 때에는 언제나 까불거리며 장난만 치는 탓에 얼핏 봐서는 성적 면에서도 불성실한 게 아닌가 싶지만 서도, 자기 본업에 관한 완성도는 특출하다 할 만큼 좋은 것이다.

 대학이라고 하는 곳은 가끔가다 그런 녀석이 있다. 평소에는 맨날 탱자탱자 놀면서 공부 같은 건 전혀 안 하는 듯이 보이는데, 이쪽이 며칠이나 걸려 필사적으로 읽은 책을 원서로 쓱 읽거나――그럼에도 이쪽보다 내용을 더 잘 파악하고 있다――, 권위주의의 상징 같은 교수를 상대로 가볍게 좌절하게 만든다거나, 왜인지 다른 학과의 인간보다 그 분야에 자세하거나 하는 둥, 뭐어 [천재]라는 싸구려 라벨을 가져다 붙여본들 이쪽의 비참함이 배가 될 뿐이라는, 그런 타입의 녀석이. 렌코도 그러한 신동스러운 부분이 있었다.


 ――문득, 아까부터 계속 그 우사미 렌코라는 인물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을 깨달았다. 화면을 의미도 없이 흘려보면서, 아무런 감개도 없는 식사를 취하고 있을 때부터, 아니 어쩌면 아까 전에 거울 앞에서 “렌코” 라는 이름을 툭 하니 내뱉은 그 순간부터 줄곧, 의식하고 있었던 것이 다른 누구도 아닌 그 아이였다. 짧은 머리카락을, 헤어 스타일이 똑같아진 나를, 장난스럽게 놀리며 즐거워하는 렌코――그러한 광경을 두서없이 떠올리고 있었다.

 뭐어 그것도 어쩔 수 없는 일. 그도 그럴 것이 요 며칠간은 줄곧 이 갑갑한 방에서 홀로 논문을 상대로 머리를 쥐어짜며 격전을 벌였던 것이다. 조금쯤 현실도피 한들 염라대왕도 용서해줄 것이다. 렌코와 함께 있으면 지루하지 않았다. 어두운 거리, 혹은 지겨운 학생 생활…… [비봉구락부]는 그러한 암울한 일상에 비춰진 한줄기의 빛이었다. 그건 의심할 여지도 없다.

 핸드폰의 메일함을 열었다. 어제 자로 작성된 렌코가 보낸 메일. 발표회가 끝나면 쫑파티라도 하자는 내용. 그것만으로도 아직 남아있던 졸음기도, 찌는 듯한 더위도, 발표회의 중압감도 누그러졌다. 이것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길조임이 틀림없다. 잠에서 깼을 때 머리를 뒤덮고 있었던 둔한 통증도, 지금에 와선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 있었다.

 의자에서 몸을 일으켜, 학교에 갈 채비를 했다. 보라색 드레스를 입고, 하얀 모자를 쓴다. 나가기 직전에 한번 더 거울 앞에서 머리 상태를 확인한다. 앞머리의 딱 중간쯤에 한 다발, 아까부터 줄곧 뭔가 영 맘에 안 드는, 그런 것을 느낀 것이다. 역시 생각만큼 제대로 정리되지 않았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갑자기 누가 이것을 눈치챘을 때를 상상하고는, 한 번 더 그 부분만 반복해서 손으로 눌렀다. 거울 속의 나는, 어째서인지 금방이라도 불을 뿜을 듯 새빨갰다.

 가죽 구두에 발을 집어 넣고, 의기양양하게 문을 열었다. 허나 맞아준 것은 지독할 만큼 무자비한 교토의 여름이다. 한 줌밖에 되지 않는 나의 체력 따위, 통학용 버스 정류장에 도착하기 바로 직전쯤에 바닥까지 싹싹 갈취 당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더위였다. 무거운 몸으로 힘겹게 이끌어 전진하며, 무슨 일이 있더라도 버스 안에서 한숨 더 자고 말겠다는 결의를 하게 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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